러일전쟁 최후의 해상전투, ‘동해해전’ 재구성

  • 저자정보: 심헌용(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저널정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 군사지 제97호
  • 발행연도: 2015.12

1905년 5월 27~28일, 러시아 함대와 일본 함대가 쓰시마 해역부터 울릉/독도 해역에 이르는 해상에서 러일전쟁의 전세를 결정짓는 대회전을 치루었다. 해전 결과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제2태평양함대(발트함대)를 괴멸시킴으로써 일본은 러일전쟁의 주도권 뿐 만 아니라, 일제 패망까지 동북아 해상주도권을 장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동안 학계에서 1905년 5월 27일~28일간 전개된 일련의 해상전투를 동해해전이라 명명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단지 5월 27일 쓰시마 해상 인근에서 전개된 전투를 ‘쓰시마 해전’으로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쓰시마 해전 이후 5월 28일 동해상에서 벌어진 전투는 일본 연합함대가 흩어져 도주하는 러시아 함대를 소탕하는 추격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시마 해전 자체도 동해 남부지역에까지 걸쳐 전개됬을뿐더러, 28일에도 울릉/독도 인근 해상과 울산/울진 근처 해상에 걸쳐 전투가 지속되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까지 이어지는 추격전이 발생하기도 하였기에, 이 전투들을 총칭할려면 쓰시마 해전보단 동해 해전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는 논문 저자의 의견이다.

오히려 일본에선 쓰시마 해전보단 일본해 해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해의 대해전에서 적 함대를 잔멸시키고, 광고(曠古)의 대첩을 거둔 연합함대의 위공을 높이 평가한다.
– 해전 이후 일왕이 내린 칙어

따라서 ‘동해해전’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해전과정을 시간대별로, 전역별로 구분하여 재구성해보았다.

제1단계 격돌: 5월 27일 주간, 대한해협 동수로 전투
제2단계 격돌: 5월 27일 야간, 동해 남부 야간 전투
제3단계 격돌: 5월 28일 오후, 동해 중서부 전투

  1. 동해해전의 전개과정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뤼순을 함락시킨 후인 1905년 1월 21일, 함대를 대한제국 진해항에 집결시켰다. 이후 진해를 해군전진기지로 활용하며 3개월간 해상훈련을 실시, 러시아 함대와의 회전을 준비하였다.

러시아 제2태평양함대는 뤼순에서 연합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도착하기 이전 뤼순이 이미 함락돼 작전이 취소되어 러시아 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게 된다. 다만 이동경로에 대한 의사소통이나 작전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짧은 경로인 대한해협으로 향하게 된다.

1905년 5월 23일, 러시아 함대가 상하이와 오키나와에서 출항하며 대한해협을 향해 북상하였다.

일본 해군은 러시아함대가 대한해협을 지날 것이라 판단, 공격적 방어작전을 수립하였다.

1905년 5월 27일 새벽, 러시아 함대는 어뢰공격을 피하기 위해 8노트의 속도로 대한해협으로 진입, 쓰시마 해협에서는 빠른 속도로 통과 하고 있었다.

오전 2시 45분경, 시나노(信濃)함이 초계 중 러시아 병원선을 발견하였다. 병원선은 일본 측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군으로 오인 하는 것으로 추정, 접근하려다 북동쪽 1.5km 지점에 수십척의 군함을 발견한다. 시나노함은 적 증원함대를 발견하였다고 타전하였다. 이때가 4시 45분이였다.

이후 초계함 이즈미(和泉)함이 러시아 함대의 항로와 진형을 파악하였는데, 순양함이 앞서고 2km 뒤에 장갑함이 뒤따랐으며 그 사이에 수송선이, 맨 뒤에 병원선이 따라왔다.

한편 시나노함의 타전을 받자마자 마산포에 있던 장갑함 주력과 쓰시마에 있던 순양함과 어뢰정을 즉시 출동시켰다.

  1. 제1단계 격돌
    27일 오후 1시 39분경 쓰시마 해협 동쪽, 일본 연합함대는 러시아 함대의 선수를 치러 왼편으로 기동하였으나 거리 측정을 잘못해 우측과 후방에 러시아 함대가 위치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러시아함대가 공격하였으면 우세를 점할 수 있었겠지만, 지체되었으며 이후 진행된 포격에서도 계속되는 지휘실수로 타격에 실패하였다.

14시 10분경, 일본 측 역시 응사를 시작해 교전이 전개되었으며, 3시 경 러시아 함대의 오슬랴뱌함이 침몰하는 등 러시아 함대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모습이 보여졌다. 선두에 섰던 알렉산드르 3세함은 데미지 컨트롤에 실패, 최종적으로 19시 침몰하였으며, 기함이였던 크냐지 수보로프함은 17시경 전투지에서 이탈하였지만 집중포화속에 침몰하였다.

이 해전에서 일본 함대는 약간의 손상만 있을 뿐 전력을 거의 완전히 보전하였지만, 러시아함대는 전함 4척중 3척이 침몰하는 등 사실상 완패하였다.

  1. 제2단계 격돌
    27일 야간, 일본 함대는 도주하는 러시아 군함을 추격하여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함대는 와해되었다. 일본 함대는 어뢰정 3척만이 침몰하는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1. 제3단계 격돌
    28일 7시, 도주하던 스베틀라나함은 죽변만 인근에서 격침된다.

28일 11시, 도주하던 블라지미르 모노마흐 함은 울산항 북동쪽 15km 지점에서 침몰하였다.

그 외 대부분의 전투는 동해 중부지역에 위치한 울릉도, 독도 주변 해상에서 전개되었다.

제3단계 전투 중 가장 큰 전투는 드미트리 돈스코이 함이 벌인 전투였는데, 28일 7시경 울릉도 남동쪽 30km 지점에서 일본 해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돈스코이함은 전날 해전에도 불구, 전력을 보전한 상태라 밤 10시까지 교전을 벌이다 스스로 자침하였다.

28일 18시, 일본 함대는 울릉도에 집결하여 잔존 러시아 함정들을 전부 격파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집중포화를 받은 니콜라이 1세 함은 독도 남남서 약 18km거리에서 항복하였으며, 러시아 어뢰정들은 울릉도 남서쪽 70km 지점에서 항복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러시아 군함은 3척 뿐이었다.

  1. 결론
    동해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서해, 남해, 동해에 이르는 사실상 동북아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또한 만주에서 교착상태에 있던 정세를 유리하게 기울도록 하여 러일전쟁에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러시아와의 강화에서도 주도권을 잡아, 사실상 러일저냉에서 승리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명칭 쓰시마해전을 동해해전으로 바꿔 쓰자고 제안하는데, 전투가 벌어진 시공간적 의미가 결코 쓰시마해역의 27일 전투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해전은 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동해 남부에서 시작해 중서부를 거쳐 북부로 이어져, 동해 전역을 전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학계에서는 쓰시마해전을 일본해해전이라 부르고 있듯이, 동해해전이란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동해와 독도.울릉도 지역에 대한 군사지리학적 의미를 적극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한다.

  1. 내 생각

쓰시마 해전으로 일본 제국은 러일전쟁을 승리, 동북아 패권을 차지함으로써 열강이 되었으며, 이는 태평양 전쟁이라는 거대한 스노우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르게 러시아 해군이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고 와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쓰시마 해전 이라는 명칭 대신 동해 해전 이라는 명칭을 쓰자는 것 인데, 일본 측에서 일본해 해전을 사용하니 우리도 동해 해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동해 명칭 강화와 군사지리학적 의미를 부각시키자는 의견에는 적극 동의하나, 기존 학계에서 지적된대로 해전 자체가 쓰시마 해역에서 이루어졌으며, 동해 전역에서 벌어진 교전은 전투가 아닌 사실상 추격전과 일방적 학살에 가깝기에 기존대로 쓰시마 해전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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