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잊혀진 해전 절이도해전의 교전 상황 및 학익진 연구: 이순신의 해양전략·전술을 중심으로

  • 저자정보: 고광섭 (목포해양대학교)
  • 저널정보: 한국해군과학기술학회 Journal of the KNST Vol.3 No.2
  • 발행연도: 2020.9

서론.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 중 격파한 왜 수군의 전선 규모는 절이도 해전이 4위에 속한다. 절이도 해전은 한산도 대접치안 명량 해전 만큼 비중있는 해전이나, 사료가 부족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료 분석.
절이도 해전에 대한 사료는 선조실록, 이충무공행록, 선조수정실록, 난중잡록, 난중일기 및 징비록이 존재한다.

1598년 8월 13일자 선조실록을 분석해 본다면, 이순신이 직접 올린 장계 내용으로, 조선 수군은 일제사격으로 적 전선을 무너트렸으며, 대규모 해전으로 사망자가 많았고, 조명연합수군의 연합작전이었음에도 명 수군은 해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98년 7월자 이충무공행록을 분석해 본다면, 7월 18일 왜 수군의 기습이 있었으며 조명연합군의 금당도 출동으로 적선은 퇴각, 조명연합수군 역시 일시 회항하였다. 7월 24일, 이순신과 진린이 연회중 해전 현장에서 온 전령으로부터 해전결과를 보고 받는 내용이다. 송여종이 수급 69개를 바친 내용은 이순신의 장계와 일치함으로 송여종이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충무공행록은 논란이 있는데, 이순신과 진린이 연회에서 구두보고를 받는 것으로 보아 직접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실제 절이도 해전이 일어난 날이 7월 24일이 아닌 19일임을 제시한다. 18일, 왜 수군의 탐망선(2척)과 조우 직후 왜 수군 지휘부는 조명연합수군를 인지하였을 것이며 이는 조명연합수군도 마찬가지다. 18일 야간, 왜 수군은 1차공격목표로 추정되는 녹도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며, 조명연합수군은 전방에 경계부대를 배치하고, 금당도해역을 전진기지로 활용하여 전투를 준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의 전투철학 상 대규모 적을 앞에 두고 경계부대만을 배치하고 본영으로 후퇴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선조수정실록을 분석해 본다면, 첫째, 이순신이 참전한 사실은 선조실록과 일치하고, 둘째, 날짜미상이나 이순신과 진린이 연회 중 기습 정보를 받고 비상 출동한 내용은 이충무공행록과 일치하며, 셋째, 적선 50여척이라는 규모가 등장하고, 넷째, 해전 장소가 고금도라는 것은 오기로 보이며, 다섯째, ‘얼마후’라는 표현으로 전투를 서술한 것으로 보아, 왜 습격 직후 전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사료들을 분석해 다음 내용들을 도출할 수 있다.

  1. 조명연합수군이 참전하였으나, 명 수군은 소극적이였으며 전공을 탐했다.
  2. 이순신과 진린이 직접 참전하였다.
  3. 7월 18일, 이순신과 진린이 연회중 기습에 대한 보고를 받고 즉시 출동하였다.
  4. 출동한 연합수군은 적선 2척을 퇴각시키고, 경계강화 이후 일시 회항했다.
  5. 전과는 적선 50척 격파, 수급 70여개이다.
  6. 7월 24일 보단 7월 19일 해전 날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7. 이충무공행록 및 난중잡록 등을 보아 교전시간은 새벽으로 보인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초기 현존함대전략을 구사하였으나, 이후 한산도대첩에서 함대결전을 시도한 이후 일정기간 요새함대전략을 구사하였으나 왜군의 결전회피로 함대격파엔 실패하였다. 이후 결사항전 형식이였던 명량해전을 거쳐 노량해전까지 함대결전을 시도하였다. 절이도 해전 직전 상황은, 왜 수군이 남해안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조선 수군은 함대를 막 재건해 서해와 남해 일부 지역의 제해권만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수군의 통제영을 고하도에서 고금도로 옮긴 것은 남해안의 제해권을 두고 해전이 일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며, 60~70여척에 불과한 조선 수군을 상대로 왜 수군은 100여척의 대함대를 동원해 고금도 본영을 선제공격, 함대결전에서 승리하여 해양통제권을 완전히 확보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수군 역시 이러한 함대결전을 피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에, 절이도 해전이 임진왜란 시기 공세적 함대결전으로 치뤄졌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또한 이순신은 해군작전 수행원칙인 공세의 원칙, 경계의 원칙, 기동과 집중의 원칙을 완벽하게 구사하였다. 절이도 해전을 해군작전 수행원칙 면에서 바라본다면,
경계: 녹도에서 기습보고를 받은 이순신 늘 하던대로 긴급출항으로 적 선두를 요격 및 송여종을 시켜 전방해상경계 강화 조치를 하였다.
공세: 비록 안정단계는 아니였으나, 그나마 공세적 작전을 수행할 전력은 된 것으로 보인다. 여느 해전에서처럼 이순신은 해전에서 물러나지 않고 공격적인 작전으로 적선 50여척을 격파하였다.
기동과 집중: 함대결전을 피할수 없음은 분명하였기에, 교전해역으로 추정되는, 넓은 해역의 거금도 서북쪽으로 왜군을 유도하여 긴 사거리의 총통으로 집중공세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나서 연구진들은 위 내용들을 바탕으로 워게임을 돌려 절이도 해전을 재구성 하였다. 진은 분석했는데 학익진을 썻을 가능성이 제일 노다고 한다.
워게임 뭐라 정리하긴 힘든데 내용이 재밌다.

느낀점: 장군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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